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림을 그릴 때면 늘 그랬다. 당신들의 교묘한 마음을 노리려고 해도 그려지는 건 내 안에 숨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보고 있자면 곪아 터진 것들이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전시가 끝나면 서둘러 그림을 포장했다. 그럴 때면,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번 전시도 속에서 곪아 터진 것이다. 그것도 아주 꼴사납게, 명치에 고름이 가득 차서 이를 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마침 작년에 이번 전시에 대한 제의가 들어 왔고, 난 고름을 터트리기 적당한 때이자 마땅한 구실이라고 여겼다.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태안의 작은 시골집으로 떠났다. 첫날에 한 계획은 어쩌다 이 따위 고름이 생겼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앞으로의 내 삶을 이어나갈 힘이 생기지 않았다. 긴 시간도 필요 없이 난 그 이유가 그림과 여자에 있다고 확신했다. 곧바로 글을 썼다. 소설이다. 오래 전부터 여태 그린 그림을 소설로 풀어내고픈 갈증이 있었고, 소설이 오히려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을 드러내줄 것 같았다.
소설을 쓰는 데에 일 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데에 반년이 흘렀고, 에 대한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준비하는 동안, 스스로가 낯설어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주체하지 못한 외로움에 고여있던 적도 많았다. 예전과 달리 그것들을 꾸역꾸역 삼켜냈다 .이번 만큼은 몰려오는 것들을 견뎌내지 않으면 전시에 걸 그림도, 소설에 쓸 문장도 남아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작가노트中
- 전시기간: 2018.11.14-11.28
- 전시장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윤보선길 69, 갤러리가비
- 문 의: 02-735-1036
- 홈페이지: http://www.gallerygabi.com